부동산 보유세 완화 추진부터 쌀 시장격리 조치까지. 대선 후보의 말 한마디에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정책 신뢰도와 일관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30일 정치권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쌀 초과 생산량 27만톤 중 20만톤을 내년 1월 시장격리하고 나머지 7만톤은 시장 여건에 따라 매입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이전까지만 해도 시장격리 조치 시행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쌀 시장격리 요건을 충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지역에선 쌀값이 오르는 등의 여러 상황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입장변화에는 여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후보는 지난 14일 “쌀 초과 생산량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 시장격리를 제안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 후보는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 발표 후에도 자신의 SNS를 통해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후보가 운을 띄우고 정부가 받아들이는 모양새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에 앞서서는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후보가 공시가 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고, 당정이 이를 받아들여 내년 보유세 과세 기준을 올해 공시가격으로 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내년부터 추진하기로 했던 가상자산 과세 유예 역시 이 후보의 주장이 나온 이후 1년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10월 국정감사 때만 해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대지 국세청장 모두 “문제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한달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물론 이 후보의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 주장이나 초과세수를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지급해야한다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후보가 ‘공약 띄우기’가 아닌 당장의 정책 변화와 반영을 요구하고, 민주당 역시 이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아직 집권하지 않은 권력인 대권 후보의 주장에 정부 정책이 흔들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행정학과 교수는 “이전 대선을 보더라도 여당 후보가 제안하고 정부가 받아들이는 ‘여당 프리미엄’은 있어왔다”면서도 “다만 정부가 선거 기간에 대통령 후보의 생각을 정책으로 실현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유지해 온 정책 방향과 목표가 있는데 대선 후보의 ‘표심 잡기’ 제안을 곧장 정책으로 반영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며 “만일 현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그 실현은 불과 3~4개월 남은 차기 정부에서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쌀 격리조치는 물가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정면 배치되는 정책이고, 부동산 세제 역시 임기 기간 동안 숱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유지해왔던 것”이라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선 후보는 이를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지만, 정부는 그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한다”고 말했다.
대권 후보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나라의 모든 사안을 꿰뚫고 있어야하는 것이 옳지만, 당장의 ‘선심성 지원’보다는 비전과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김우철 교수는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 능통해야하지만 세부적인 사안은 전문성 있는 이들에게 맞겨야한다”면서 “농민들을 위한다면 당장 수매가를 올리고 내리는 문제까지 관여할 것이 아니라 과잉공급이나 시장가격-수매가격 간의 항구적 격차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