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가계 부담’을 이유로 내년 1분기(1~3개월) 전기·가스요금을 동결한다던 정부가 결국 2분기부터 요금인상을 결정했다.
관련 산업계의 숱한 ‘요금 인상’ 압박에 떠밀리는 모습으로, 하필 인상 시기가 내년 대통령선거 이후와 맞물리면서 애초 정부의 요금동결 결정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했다. 특히 현 정부가 임기 중 억제한 요금 인상 부담을 다음 정부가 떠넘기는 모양새가 됐다.
◇내년 1분기 전기·가스요금 동결했던 정부…고작 3개월짜리 혜택 ‘생색’
28일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등에 따르면 내년 4월 이후 전기·가스요금이 일제히 인상된다.
전기요금은 4월과 10월 기준연료비를 2회에 나눠 9.8원/kWh(4월 4.9원/kWh, 10월 4.9원/kWh) 인상한다. 기후환경요금도 2.0원/kWh 인상된 단가를 4월 1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요금대비 내년 인상분을 모두 반영한 금액(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으로 따지면 인상율은 10% 내외다.
가스요금 역시 내년 5월 MJ당 1.23원 오른다. 또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9원, 2.3원 인상한다. 현재 요금대비 가스요금 인상율(내년 10월 이후 요금기준)은 16.17%다.
내년 1분기(1~3개월) 요금동결을 밝힌 지 일주일만으로, 정부의 혜택(?)은 단기 3개월짜리에 지나지 않게 됐다.
관련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숱한 ‘요금 인상’ 압박에도 꿋꿋하게 동결을 밀어붙이던 정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요금인상 배경으로는 국제유가 상승을 이유로 들었다.
◇재정 건전성 ‘빨간 불’ 켜진 한전·가스공사 겨우 숨통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영업 손실은 이미 수조원대에 이른다.
수년 째 국제유가 상승 등 원자재 값 상승에도 인상요인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적자가 누적된 탓이다. 이번 요금인상 결정이 이들 공기업에 숨통을 트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의 이번 요금인상액은 최근 1년간(2020년 12년~2021년 11월)의 국제연료 인상 폭을 산정해 반영한 결과다.
이 기간 유연탄 가격은 20.6%, 천연가스 20.7%, 벙커C(BC)유는 31.2% 올랐다.
기후환경조정요금도 RPS(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도) 의무이행 비율 증가(7→9%),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비율 증가(3→10%) 및 석탄발전 상한제약 시행 등의 요인을 반영해 결정했다.
한전은 이번 요금인상으로 당장의 적자 폭은 줄어들겠지만, 재정 위기는 끝이 아닌 만큼 내년에는 ‘재무위기 대응 비상대책위’를 구성·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신기술·신공법 적용, 설비효율 개선을 통한 비용절감과 자산매각, 사업구조 조정(비핵심사업) 등도 면밀히 검토해 재정 건전화를 꾀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한전이 내부적으로 추산한 올해 영업손실 규모는 4조3845억원이다.
가스공사도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스공사는 이번 요금조정으로 올해 말까지 누적된 원료비 미수금 1조8000억원을 2년 내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도시가스요금은 2020년 7월부터 동결중인데 민수용(가정용, 산업용, 운수용, 도시가스용) 요금 동결을 멈추지 않을 경우 공사의 올 연말 미수금은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여기에 난방용 수요가 급증하는 동절기에도 가정용 요금 동결이 이어질 경우 내년 3월말 미수금은 무려 3조원까지 급증할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되는 등 재정 건전성에 심각한 우려를 낳았다.
◇대선 이후와 맞물린 인상시기는 ‘논란’
공기업 재정 건전성과 미래세대를 위한 ‘요금 인상’ 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나 인상 시기를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내년 3월 치러질 대통령선거 이후로 인상 시기를 정하면서 정부의 ‘1분기(1~3개월) 동결’ 결정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일각에는 다분히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결정이 아니었겠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번 요금인상 발표는 지난 20일 내년 1분기(1~3월) 전기·가스요금 ‘동결’ 입장을 밝힌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나왔다.
당시 한전과 가스공사는 정부의 압박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내년 1분기(1~3개월) 요금동결을 발표했었다. 정부는 연 초 민간부문 물가상승에 더한 공공요금 인상은 서민가계에 부담이라는 이유로 동결 입장을 견지해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가계 부담을 고려해 요금을 동결하겠다던 정부가 결국 요금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면서 “묘하게 그 시기가 대통령선거 이후다. 중차대한 선거를 앞두고 국민정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심사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부득이 요금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관련 산업계나 전문가 등의 요금 현실화 주장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해 국민 반감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