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작스럽게 경찰로부터 통보를 받은 A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피해자 신분이 돼 있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확인한 피의자 B씨는 일면식도 없는 남. 하지만 해외 사이트 등 온라인상에는 B씨가 A씨의 얼굴로 합성한 음란물이 버젓이 돌고 있었다.
B씨는 어떻게 전혀 모르는 A씨를 활용해 음란물을 제작할 수 있었던 걸까. 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다. A씨의 SNS 프로필 사진을 무단으로 이용, 딥페이크 성적 허위 영상물을 만들어 유포한 것. 경찰 조사 결과, B씨가 남의 SNS 프로필 사진에 타인의 알몸 사진을 합성하는 등 방법으로 약 열흘 동안 제작·유포한 허위영상물의 피해자만 모두 7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청소년도 2명이나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합성은 물론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한 신종 디지털성범죄인 ‘딥페이크 성적 허위영상물’ 유포 등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지만, 우리 대응체계는 아직까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원인은 허위영상물의 주된 유포 경로가 해외라는 점이 꼽힌다.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허위영상물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이 제정된 2020년 6월 이후 올해 8월까지 방심위가 시정요구 및 자율규제 조치한 성적 허위영상물은 총 6357건에 달했다.
방심위 조치건수는 2020년에는 548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988건으로 사실상 3000건에 달했다. 올해의 경우, 8월 현재까지의 처리 건수가 이미 작년 전체 처리 건수에 육박할 정도인 2821건으로 3년새 5배 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허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유포 발생 건수 총 264건 중 검거 건수는 121건에 불과했다. 45.83%의 검거율에 그친 것이다.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가 잇따르면서 2020년 관련 법률이 개정돼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를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에 따라 특정인의 얼굴·신체·음성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한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발견하거나 인지하기 어렵고, 신고하더라도 해외에 서버를 둔 SNS 기업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여전히 한계로 지적받고 있다.
최근에는 ‘n번방 사건’을 조명한 것으로 알려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을 겨냥한 일명 ‘능욕방'(특정인을 대상으로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진·영상 가공물 등이 공유되는 그룹채팅방) 개설 사실을 밝혀 딥페이크 허위영상물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다시금 사회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허 의원은 “방심위 자율규제의 99.8%, 시정요구의 91.9%가 해외 사이트인 만큼 허위영상물의 주요 유포 경로가 해외 사업자이다 보니 관계당국의 대응이 쉽지 않다”며 “미디어 및 통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관련 범죄도 늘어나고 있으므로, 수사당국이 관련 기술 동향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 양성과 전담부서 설치, 국제공조 네트워크 구축 등 선제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