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 공급 부족 현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해외 분석기관의 전망이 나오면서 수급난 ‘장기화’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도 단기간 내 부족난 해결이 쉽지 않겠다는 상황인식 아래, 생산차질을 최소화 할 방안 모색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최근 ‘아시아 무역 브리프:글로벌 반도체 칩 부족’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로 소비재 전자제품 수요가 2022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이에 따라 반도체 칩 공급 부족 역시 내년 중반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EIU는 생활가전의 경우 구세대 반도체 칩 비중이 높고 이를 공급하는 회사도 많기 때문에 칩 부족 현상이 상대적으로 해소되겠지만, 자동차 반도체는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EIU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는 칩 제조업체에 자동차 부문의 공급을 우선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반도체 제조사들은 더 수익성이 높은 가전 제품에서 차량용 칩으로 생산을 돌릴 경제적 유인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EIU는 그러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규모 투자를 선언했지만 공장 건립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면서 결국 현재 반도체 칩 부족 문제의 해결은 아시아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반도체 부족현상은 국내 산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기차 생산에 제동이 걸리면서 신차 출시가 미뤄지고, 국내 완성차 판매업체들은 모자란 반도체 부품으로 인해 내수판매에서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와 쌍용차는 전년 동월 대비 내수가 각각 12.4%, 34.6% 감소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급난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각국은 저마다 난항을 타개할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비롯해 고도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종합 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고, 세액공제를 늘리는 등 2030년까지 510조원 이상의 민간투자를 유인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주도에 나섰다.
정부의 반도체 전략은 미국과 중국의 공격적인 반도체 경쟁에서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 특히 업계에서 핵심적으로 요구해왔던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확대와 전문인력 양성이 지원 전략에 포함되면서 업계 역시 이를 환영했다.
다만 정부의 대책이 차량용 반도체의 ‘국산화’로 공급망 구축에는 도움이 되지만, 당장의 수급난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도 단기적 방안으로 대만, 일본, 네덜란드 측에 물량 지원 등 공급난 해소를 위한 협력을 다각도로 요청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일본 르네사스사에 장관 명의의 공문을 보내 제조물량을 국내 업체에 우선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도 수급난 해소를 위해 업계와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문 장관은 전날(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완전히 수급(난)이 풀리는 것은 하반기에도 자신할 수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여러 전망이 나오겠지만, 우리는 업계하고 노력을 같이해 최대한 수급 문제가 업계에게 유리하게 갈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산업부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 장관은 수급난 해결을 위한 단기적 방안으로 외국인 투자 형태로 들어온 쪽으로의 추가 투자나 증설 지원 등을 언급했다. 그는 “업계와 협약을 맺은 부분도 있고, 진전이 있을 수 있도록 정부도 (상황을) 지켜보고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당장 반도체 보릿고개 현상이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같은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가 단기적으로는 물량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중장기적으로는 ‘국산화’ 및 생태계 고도화를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관측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통화에서 “차량용 반도체는 이미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단기적으로 해소할 뾰족한 방법은 당장 없다”면서 “‘전략물자’가 된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내재화 부분들을 통해 부족현상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