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 아파트 공급의 걸림돌로 불렸던 분양가 상한제를 일부 개선한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이었던 심사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민간택지에서는 개별입지 특성을 고려해 보다 현실성 있는 분양가를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장에서는 사업 주체와 지자체 갈등의 주요 원인인 ‘깜깜이 산정’이 정상화되면서 민간 공급에 일부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규제의 틀이 여전한 만큼 조합이 원하는 만큼의 분양가 상승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전날 ‘분양가 상한제 심사매뉴얼’을 발표하고 전국 지자체와 민간업계에 배포했다.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임의로 분양가를 깎지 못하도록 세부 항목별 기준을 구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민간택지의 경우 개별 입지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주변환경·지리적 근접성·단지 규모 등을 고려하고, 택지 조성에 쓰이는 비용이 적절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합리적 방식을 마련하겠단 것이다.
◇’깜깜이 산정’ 없어져 민간 공급 숨통…”공급 늦출 ‘갈등 불씨’ 줄였다”
시장 전문가들은 제도 개편으로 민간 아파트 공급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내다봤다. 분양가 산정 갈등으로 서울 내 주요 단지 공급이 지연되는 사례가 많았는데, 갈등의 불씨를 없애면서 분양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란 예상이다.
일례로 서울에서는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둔촌올림픽파크에비뉴포레)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시한 평당 분양가(2990만원)가 조합원 눈높이인 3550만원에 크게 못 미쳐 분양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다수 조합이 분양가 문제로 공급을 미루고 있다.
업계에서는 제도 개선으로 ‘깜깜이’ 산정을 벗어나 사업의 예측 가능성이 제고됐다고 봤다. 갈등 여지가 줄면서 주택 공급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도 판단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분양가 책정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고 인근 시세 등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완한 것이 긍정적”이라며 “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한국주택협회도 “(산정 기준 구체화로) 사업 예측 가능성이 올라가면서 사업자는 사업 계획의 원활한 수립과 추진이 가능해졌다”며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합하는 신속한 아파트 공급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조합에서도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봤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준이 워낙 깜깜이라 ‘정부 입맛대로 정한다’는 의혹까지 있었다”며 “조합이 대응도 못 하는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 갈등이 심해지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규제 한계는 여전해 공급 대폭 확대는 글쎄”…청약 대기자 반발도 과제
개편안 자체는 공급 확대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분양가 상한제라는 규제 ‘큰 틀’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분양가가 현재 주변 시세 70~80%를 반영하는 수준에서 5~10%포인트(p)가량 높아질 것이란 예상을 내놓는다. 제도 취지상 완전한 시세 반영은 어렵다는 것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규제 완화보단 심사 기준을 합리적으로 고쳐 제도를 현실화하겠단 취지”라며 “수익성 개선엔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분양가 상한제 체제하에서는 민간이 원하는 만큼의 분양가 상승이 이뤄지긴 어렵다”고 예상했다.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도 “기준을 구체화했다고 하더라도 상한은 여전히 정해두고 있고, 재초환(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같은 규제도 있다”며 “조합에서 고려해야할 점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미뤄졌던 공급이 확 풀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개편안 방향성은 긍정적이지만, 공급 자체는 분상제 개편보다는 내년 선거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전반적인 규제 완화가 정책 변화에 따라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산정 제도 개편으로 분양가가 일부분 오를 수밖에 없는 만큼, 청약 대기자들의 반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누리꾼은 “아무리 로또 분양이라고 하더라도, 몇 년 전보다 분양가가 많이 올라서 서민들에겐 그 가격도 버겁다”며 “저렴하게 분양하겠다고 희망고문을 하더니, 분양가까지 오르면 서민들은 희망이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