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판매왕’을 떠올릴 때 상상하는 이미지가 있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눈빛으로 고객을 설득하는 모습. 오랜 경력으로 쌓아온 흔들림 없는 자기 철학과 소신. 중후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매까지.
지난 1일 롯데하이마트 주안점에서 이상민 매니저(34)를 만난 직후 예상했던 모든 것이 빗나갔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꺼낸 첫마디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어서…”였다. 하루에도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는 베테랑에게서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긴장을 풀겠다며 정장 소매를 걷어붙이고 편히 고쳐앉은 자세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본래 위치로 돌아왔다.
이상민 매니저는 “다른 훌륭한 판매왕은 고객 관리를 위해 휴대전화 2~3개는 기본이고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운영하시더라”며 “저는 특출나게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매장에 오신 고객님께 정말 진심을 다하는 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5년 차 이 매니저의 주력 상품은 ‘김치냉장고’다. 지난해만 김치냉장고로 매출 2억7000만원을 달성해 롯데하이마트 전국 430여개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3000여명 중 1위에 올랐다. 1년간 판매한 김치냉장고는 무려 170여대다. 이틀에 1대씩 판매한 셈이다. 그는 “11월 김치냉장고 성수기가 시작되면서 주말에는 상담이 쉴틈없이 밀려든다”며 “많게는 하루에 10대씩도 판매한다”고 말했다.
이상민 매니저는 판매왕이 될 수 있었던 비결로 자신의 ‘평범함’을 꼽았다. 김치냉장고라는 상품과 아들 같은 친근한 매력 또한 궁합이 잘 맞았다. 취직 전 횟집과 고깃집에서 일하며 어머니 나이대 직원과 소통했던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그는 “고객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이 ‘나 아는 사람 닮았다’라는 말”이라며 “주 고객이 저희 어머니 연령대이기 때문에 타지에서 왔다고 일부러 이야기를 꺼내면 격려해주며 마음을 여는 고객도 있다”고 웃어 보였다.
동료와 상사가 이 매니저를 입 모아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비장의 무기’를 여전히 숨기고 있을 것이란 의심이 풀렸다. 그가 앞서 말한 대로 성실함과 꾸준함이 곧 그의 최대 무기였다.
김명기 롯데하이마트 주안점 지점장은 “이상민 매니저는 예의가 바르고 차분한 성격이 최대 장점”이라며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궂은 일도 마다치 않고, 일을 맡으면 누구보다 꼼꼼하다”고 추켜세웠다. ‘어른들께 예의가 바른 덕분에(?)’ 안마의자 판매량도 이상민 매니저가 지점 직원 중 1위라고 귀띔했다.
이 매니저가 남들보다 한 시간 전에 미리 출근한다는 이야기는 장동원 주안점 판매부장이 대신 전했다. 장 부장은 “(이 매니저는)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코너를 정리한다”며 “간단한 것 하나조차도 비뚤어진 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디테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원하는 금액대와 디자인을 잘 파악하고 비슷한 모델을 적재적소에 소개해 주는 눈썰미가 있다”며 “대체 불가한 직원”이라고 평가했다.
김치냉장고 판매왕이 사용하는 김치냉장고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상민 매니저는 “정확한 모델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저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주류 보관 기능이 있는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분들이 많아져서 최근 김치냉장고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김치냉장고도 매년 트렌드가 변한다. 이 매니저는 “올해 가장 크게 바뀐 점은 다채로운 색상”이라며 “냉장고 문이 기존 메탈 색상에서 컬러풀하게 변했고 강화유리를 적용한 점이 눈에 띈다. 최근엔 고객들이 인테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가전도 가구답게 꾸미는 시대가 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이 늘면서 시중에서 판매하는 포장김치를 최적의 온도로 보관·발효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똑똑한 김치냉장고도 등장했다. 주류를 보관하거나 과일청을 만들어 보관할 수 있는 기능도 최근 고객들이 눈여겨보는 옵션 중 하나다.
‘좋은’ 김치냉장고를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매니저는 “스탠드형·뚜껑형·가격·스타일·용량에 상관없이 ‘고객의 쓰임새’에 맞는 모델이 가장 좋은 김치냉장고”라고 대답했다. 그는 “김치냉장고는 신제품이 가장 많이 나오고 행사가 많은 11월에 구매하는 것을 추천해 드린다. 실제 제가 판매하는 김치냉장고 40%정도가 11월과 12월에 몰려있다”고 귀띔했다.
이상민 매니저는 “가끔 매장에 오셔서 휴대전화를 들고 온라인 가격과 비교하는 고객분들도 있다”며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복잡한 가전제품 기능과 가격을 저 같은 매니저로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으실 수 있고 온라인에 없는 최신 모델 크기나 기능을 직접 보고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친절한 영업직원 중에서도 가장 친절하다고 자부하는 이상민 매니저도 2시간 가까이 상담을 하고 난 뒤 구매하지 않는 고객을 만날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든다고 했다.
그는 “구매를 하지 않는 고객은 그냥 보내지 않고 어떤 점이 불편하셨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알아본다”며 “가격 문제라면 할인 가능한 방법을 찾고 이후 연락해 재방문하실 수도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에 에어컨을 구매한 고객이 겨울에 김치냉장고를 사러 그에게 돌아오는 이유가 짐작됐다.
“지금 이 순간 이 시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목표예요. 오시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모토와 닮아있습니다. 올해는 3억원까지 매출을 달성해 다시 한번 김치냉장고 판매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싶어요. 판매부장과 지점장까지도 승진해서 롯데하이마트에서 가장 큰 지점의 지점장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상민 매니저가 앞으로 목표를 묻는 말에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