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팀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기존 약물을 대상으로 금연 치료제로 쓸 만한 치료제를 발굴했다. 감기약이나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금연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3일 미국 펜스테이트대학교 의과대학과 미네소타대학교 연구팀은 감기와 독감으로 인한 기침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덱스트로메트로핀’ 같은 약물이 잠재적으로 담배를 끊도록 돕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프로그램이 약물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학습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일부 후보를 발굴했다며 이미 일부 후보약물은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흡연은 심혈관 또는 호흡기질환, 암 등 여러 질병의 위험요인이다. 미국에서만 매년 약 50만명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다. 연구팀은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담배에 중독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130만명 이상의 유전 데이터를 대상으로 유전적인 특징과 흡연 행동에 대한 특정 데이터를 분석해 흡연과 관련된 유전자 약 400개를 확인했다.
니코틴 수용체에 어떤 명령을 전달하거나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인 도파민 신호에 관여하는 유전자 등이 흡연과 연결 고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나머지 유전자가 어떤 경로로 역할을 하는지 파악한 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미 승인된 약물로 해당 유전자 작용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파악했다.
연구팀은 또 분석 유전자 정보 대부분이 유럽계 참가자였다며 아시아, 아프리카 또는 미국 원주민 등을 조상으로 가진 참가자 약 15만명의 유전정보도 포함해 프로그램을 기계학습 시켰다.
분석 결과 기침약으로 쓰는 덱스트로메토르핀 외에도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쓰이는 ‘갈란타민’, 중추성 근육이완제인 ‘바클로펜’을 비롯해 금연을 위해 용도를 변경할 수 있을 만한 약물을 최소 8개 확인했다.
연구팀은 “대규모 의료 데이터와 기계학습을 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약물 용도를 변경하면 비용과 시간,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며 “우리가 확인한 약물 중 일부는 이미 임상시험을 통해 흡연자의 금연을 돕는 능력을 시험 중이다. 향후 연구를 통해 다른 후보 약물을 더 탐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혈통을 가진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계 학습한 프로그램이 약물 남용 가능성이 있는 개인을 식별하고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연구 결과는 지난달 26일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유전학'(nature genetics)에 게재됐다.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이 다른 적응증에도 효과를 보이는 경우를 신약 재창출이라고 부른다. 이미 시판됐거나 임상시험에서 상업화에 실패한 약물에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 신약으로 개발하는 방법이다. 처음부터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크게 아끼고 약물 약동학 등 안전성과 관련된 위험성도 낮출 수 있다.
최근에는 자가면역질환이나 구충제 등으로 승인받았던 약물이 코로나19에도 유효한 사례가 나와 여러 제약사에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사례로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는 ‘비아그라’와 탈모치료제 ‘미녹시딜’ 등이 있다. 비아그라는 애초에 심혈관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임상실패 이후 발기부전 치료제로 적응증을 전환하면서 새로운 약물로 재탄생했다. 미녹시딜은 원래 궤양 및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던 약물이었다.
임신부의 입덧 완화제로 출시했던 ‘탈리도마이드’는 전 세계적으로 수천명의 기형아 출산을 일으켜 시장에서 퇴출됐지만 이후 약물 재창출 과정을 거쳐 다발성골수종과 한센병 치료제로 허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