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영업을 중단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는 기업들의 ‘러시아 보이콧’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러시아 보이콧’ 동참을 요청받고 있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고심도 커지고 있지만 재계에선 현실적으로 동참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10일 현재 애플·테슬라·인텔·나이키·넷플릭스·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들은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판매 매장은 문을 닫고 현지 제조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으며 사업 철수를 선언한 기업도 있다.
재계에선 국내 기업에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을 요청하는 대내외적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4일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 내 삼성 제품과 서비스 공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이콧 동참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러시아를 떠나는 기업도 있다. 코카콜라·맥도날드·펩시·스타벅스 등 식음료 기업들은 그동안 매출 비중이 높은 러시아 시장에서 영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거세지는 비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전쟁 발발 2주 만인 지난 8일(현지시간) 러시아 시장에서 영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비슷한 입장에 놓일 수 있는 만큼 난처한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지만 재계에선 해외 글로벌 기업처럼 적극적인 보이콧에 나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우선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020년 전체 매출 중 러시아 지역 매출(4조3963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86%이며 LG전자도 1조6634억원으로 2.63%에 해당한다. 전체와 비교하면 작은 수준이지만 조 단위 매출인 만큼 섣불리 나서기엔 부담스럽다. 지난해 러시아 시장에서 37만7612대의 완성차를 팔아 22.6%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 현대·기아차의 상황도 비슷하다.
재계는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성급하게 제재에 나선다면 그동안 어렵게 일군 러시아 시장을 중국 등 경쟁 기업들에 쉽게 내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계 6위 스마트폰 시장인 러시아에서 삼성전자의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34%로 1위인데 보이콧에 나설 경우 샤오미(28%) 등 중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제재에 적극 동참한 기업들은 러시아 매출 비중이 낮아 부담이 적다는 게 공통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러시아 보이콧의 대명사는 애플인데, 애플은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15%로 높지 않고 그나마 대부분 러시아 직접 수출이 아니라 프랑스·독일 판매분이 블랙마켓을 거쳐 러시아로 가고 있어 매출액이 낮다”며 “안 팔아도 손해보는 게 없고 제재에 나서면 가장 큰 시장인 자국에서 이미지도 좋아지기에 ‘러시아에 안 팔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만약 전략물자나 군대에서 쓰이는 무기·화학물질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러시아 영업 보이콧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제품 대부분은 TV·스마트폰·자동차 등 평범한 러시아 국민들이 쓰는 소비재”라며 “이윤을 버릴 만큼의 명분도 없어 제재 동참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직접적인 경제 제재에 동참하기 어려운 만큼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기부 등 인도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600만달러(약 74억원)의 현금·물품을 지원했고 카카오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위해 자사의 암호화폐 클레이 300만개(약 42억원)를 유니세프에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