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옛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 매입 행위를 회사의 ‘사업기회 유용’ 행위로 판단하고 제재에 나서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공정위 제재와 관련해 “앞으로 기업을 인수하려면, 회사가 지분 100%를 다 사야만 사업기회 유용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냐”라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총수 일가나 대주주가 책임 경영 차원에서 지분 일부를 인수하는 행위가 앞으로는 사업기회 유용 행위 논란으로 빈번하게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 SK “전원회의 심의 내용 제대로 반영 안돼”…행정소송 제기할 듯
이날 공정위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SK그룹 지주사인 SK㈜가 2017년 실트론 지분 70.6%를 취득한 뒤 잔여지분 29.4%는 인수하지 않고 최태원 회장이 이를 인수한 것은 사업기회 제공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SK㈜와 최태원 회장에게 각각 과징금 8억원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2017년 11월 경제개혁연대가 SK의 실트론 인수 과정에 대해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하면서 시작된다. 공정위는 3년여간 조사를 진행했고, 이달 15일 법원의 1심과 같은 효력이 있는 전원회의를 열어 사건의 위법여부를 최종적으로 심리한 뒤 이번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 공정위는 “이번 조치는 사업기회 제공행위와 사실상 동일한 행위를 규제하고 있는 상법 상 ‘회사기회 유용금지’ 규정이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해당 규정을 적용한 소송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지배주주가 절대적 지배력과 내부 정보를 활용해 계열회사의 사업기회를 이용한 행위를 최초 제재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SK는 전원회의 심판정에 최태원 회장이 직접 출석, 이번 지분 인수 경위를 소상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법성이 있다는 판결로까지 이어진 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우선 공정위가 SK㈜가 잔여지분 29.4%의 매도자인 우리은행과 비공개 협상을 통해 최 회장이 지분을 인수토록 했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당시 입찰을 주도했던 우리은행 담당자는 전원회의에서 “SK㈜와 우리은행 간 별도접촉은 전혀 없었고 정상적인 경쟁입찰을 진행했다”라고 진술했고, 이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 심사관도 이를 인정했으나, 22일 결과문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날 공정위는 비공개 협상이 있었다는 증거로, 최태원 회장의 인수를 주관한 한국투자증권 내부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했다. 공개된 주간사 내부자료에는 ‘형식상 공개 입찰 매각이나 실질적으로는 프라이빗 딜에 준하는 신속한 거래를 진행해 빠른 시일 내 상호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 등 체결 가능함’이라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이는 딜을 성사시켜야 하는 인수주간사 입장에서 내부문서에 얼마든지 적을 수 있는 문구로, 이를 근거로 우리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의 공개경쟁입찰을 우리은행과 SK 간 ‘짬짜미’로 단정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된다는 게 당시 채권단과 SK의 입장이다.
공정위는 또 SK㈜가 최 회장의 잔여지분 취득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는데, 전원회의 당시 주심위원은 ‘지원을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고, 공정위 측 심사관도 이에 수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원회의에서 입증된 객관적 사실이 최종 결과문에는 아예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원회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처럼 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데,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가 함께 참여해 공정위측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독립적객관적 판단을 내리는 시스템”이라며 “그러나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는 전원회의 심의 내용이 결과문에 상당부문 반영되지 않았고, 이는 전원회의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SK그룹은 이번 공정위의 과징금과 향후 재발을 금지한 시정명령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대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재계 “공정위가 무리하게 법리적용, 기업 현실 고려하지 않은 처사”
재계에서는 이 같은 절차적 문제보다 공정위가 무리하게 법리적용을 했다는 부분을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공정위는 SK㈜가 잔여지분을 인수하지 않고 이를 최 회장이 인수한 것을 두고 ‘소극적 방식의 사업기회 제공’이라고 판단했다. SK㈜가 잔여지분 취득을 포기하고 최 회장이 이를 인수한 것은 소극적 방식으로 사업기회를 제공했다는 게 공정위의 논리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기업이 인수합병을 할 때 반드시 잔여지분까지 100% 취득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간과한 비현실적인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공정위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상당한 이익이 예상되는 사업을 100% 인수하지 않은 기업은 모두 법적 처벌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배주주의 소수 지분 취득이 정말 사업기회라고 한다면, 공정위는 왜 지금까지 이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았느냐”며 “공정위가 처벌 근거가 없음에도 최 회장의 소수지분 취득을 문제삼은 것이고, 앞으로 총수들의 지분 취득행위가 빈번하게 사업기회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SK㈜가 잔여지분을 인수하지 않는 결정을 이사회에 상정하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는데, 이 같은 판단은 공정위가 기업 현실을 도외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은 수없이 많은 인수합병 기회가 있고, 그 때마다 ‘사지않는 논의’를 이사회에 상정해야 한다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을 뿐더러,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SK㈜가 잔여지분 잠재인수 후보자들에게 실사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 결과적으로 최 회장이 입찰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만들었다고 판단한 부분도 논란이다. 실사는 잔여지분 매각주체인 채권단이 판단할 문제이지, SK㈜가 해줘야 할 의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총 16억원인 과징금 산정에서도 공정위의 자기 모순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과징금 산정 배경을 설명하면서 “매출액이 없는 경우에는 20억원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공정위 주장대로 최 회장의 잔여지분 인수를 ‘사업기회 취득’으로 봤다면, 실트론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매겨야 앞뒤가 맞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지분을 인수할 때는 비용, 향후 리스크 등을 고려해 적정 지분을 확보해 리스크를 덜거나 분산하려고 하지 무조건 100%를 다 인수하지는 않을텐데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공정위는 상법에 ‘회사기회 유용금지’ 규정이 도입된 지 관련 소송이 전무한 상황에서 첫 제재라고 자평하지만, 왜 10년간 관련 소송이 없었을지를 거꾸로 생각해봐야 한다. 지분 매입 행위와 관련해 논란만 키우는 게 아닌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