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나라에서 만 16세,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정당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효과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정치권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정당 가입 연령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낮은 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1일 법조계와 교육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등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 가입 연령을 법률로 규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 정당에서 자체적으로 당원 가입 자격 요건을 정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집권당인 보수당은 연령 제한이 없고, 제1 야당인 노동당은 14세, 녹색당이 16세부터 입당이 가능하다. 다만 보수당은 15세 이상의 당원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한다.
독일도 기독교민주연합(CDU), 자유민주당 등 우파 계열 정당은 16세이고, 사회민주당(SPD) 등 좌파 계열 정당은 14세 이상이 가입할 수 있다. 독일 녹색당은 입당 연령을 제한하지 않는다.
프랑스 집권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와 공화당도 입당 연령 제한은 없다. 사회당만 15세 이상을 입당 허용 연령으로 규정한다.
스웨덴 역시 사회민주노동당, 온건당, 스웨덴 민주당 등 주요 정당이 입당 연령을 제한하지 않는다. 청년회 가입은 사회민주당이 13세, 온건당이 12세, 중앙당이 7세 이상으로 제한한다.
스위스 국민당은 입당 연령이 16세 이상이고, 사회민주당은 연령 제한이 없다. 핀란드 청소년은 15세 때부터 정당 청년조직에 가입할 수 있다.
미국도 연방 또는 주 차원에서 당원 연령 제한은 없다. 당원 자격은 주 정당에서 규정하는데 대부분 선거 연령인 18세 이상을 요건으로 두고 있다. 위스콘신주 민주당이 14세, 미시간주 민주당이 16세 이상을 입당 조건으로 지정하는 등 일부 예외도 있다.

서구권에선 일찍부터 정책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 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 독일, 프랑스에서는 모의선거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핀란드에선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2006년 만들어진 핀란드 청소년기본법 8조는 “청소년에게 반드시 지역사회의 청소년 단체 및 정책을 다루는 일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회 역시 행정부와 별도로 2003년부터 청소년 정치 참여 정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매년 7월 남부 고트란드섬의 작은 마을 알메달렌 공원에서 정치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 8일 동안 수만명의 정치인과 시민들이 거리 세미나와 강연, 정책 간담회, 토론회 등을 진행한다.
’21세기판 아고라’로도 불리는 이 축제에서는 각 정당을 상징하는 띠를 두른 10대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참가한다. 만 15세에 기후변화 등교 거부 운동을 이끌어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된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이렇게 탄생했다.
영국의 보수당, 노동당 등도 청년조직을 두고 있다. 보수당의 25세 이하 청년조직 ‘젊은 보수당'(Young Conservatives)은 1만500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참정권 확대를 반기면서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정치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와 법’ 과목이 입시에서 빠지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고, 교사의 정치 관련 정당 관련 발언이 금지된 상황에서 갑자기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허용했다”며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위한 인프라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 가입 연령만 낮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정당 정치는 무엇이고, 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 정치 관련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이 주체적인 시민으로서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