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지난달 16일 강원도 고성군 지역에서 발생한 북한 남성의 이른바 ‘수영 귀순’ 사건과 관련해 관할 부대 지휘관 등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을 결정했으나 그 수위를 놓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해당 지역의 해안경계 임무를 책임지는 육군 제22보병사단의 표창수 사단장(소장)은 군 안팎의 예상대로 보직해임 조치와 함께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으나, 상급부대장으로서 더 큰 지휘책임을 갖는 강창구 8군단장(중장)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명의 서면경고를 받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4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 ‘수영 귀순’ 사건으로 문책 등 인사조치가 결정된 관련자는 모두 24명이다. 그러나 군인으로서 ‘최악의 불명예’라고 할 수 있는 보직해임 처분을 받은 건 표 사단장 1명뿐이다.
이는 지난 2019년 6월 발생한 북한 소형 목선의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 땐 관할 부대장인 23사단장이 아닌 8군단장이 보직해임됐고,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이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군내 사건·사고 발생과 관련해 군단장이 보직해임된 건 삼척항 사건 때가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삼척항 사건 땐 8군단장이 열상감시장비(TOD)를 주간에만 운용토록 지시하는 등 명백한 과오가 있었다”면서 “이번 사건(수영 귀순)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달 23일 이번 ‘수영 귀순’ 사건 조사결과 발표에서 “엄중한 상황임에도 8군단의 초기 상황 판단이 안일했고 대응도 미흡했다”고 지적했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최종적으로 ‘당시 8군단의 대응은 담당 참모들의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기에 군단장에게 전적인 책임을 묻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8군단장에 대한 경고조치와 별개로 군단 작전참모 및 정보참모 등에 대한 인사 조치를 육군 지상작전사령부에 위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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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욱 국방부 장관. 2021.2.2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국방부 관계자는 “군단장과 사단장이 함께 보직해임 처분을 받은 사례는 이전에도 없었다”며 두 지휘관이 동시에 보직해임되면 부대 운용과 지휘체계 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 스스로 이번 ‘수영 귀순’ 사건이 총체적 경계실패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인한 사실을 감안할 때 ‘사단장 보직해임-군단장 경고’는 너무 기계적인 문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예비역 장교는 “징계위에서 잘잘못을 가려 그에 합당한 처분을 받는 거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보직해임은 갑자기 ‘쟤 옷 벗겨’ 하고 자리에서 쫓아내는 것밖에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보직해임이 사건·사고의 책임을 지휘관 한 사람에게 모두 떠넘기는 일종의 ‘희생양 만들기’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19년 삼척항 사건 당시엔 군단장이, 그리고 이번 수영 귀순 사건과 관련해선 22사단장이 각각 희생양이 된 측면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서욱 국방부 장관도 이번 ‘수영 귀순’ 사건과 관련해선 문책을 서두르기보다는 22사단 관할 구역에서 유독 경계실패 사건이 잦은 이유 등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을 우선토록 지시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2019년 삼척항 귀순 사건이 사건 발생(6월15일) 뒤 19일째 관련자 징계(7월3일)가 이뤄졌던 것과 비교할 때, 이번 사건에 17일째에 징계가 이뤄지면서 오히려 기간이 더 짧아졌다. 사건 발생 후 지난 보름여 간 군내에서 “모종의 기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22사단장이 이번 사건 발생 뒤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는 보도가 오히려 징계를 서두르게 만든 한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일부 국회 국방위원들이 이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수위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