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가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할리우드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한 영화인 92명이 공개서한을 통해 영화제의 태도를 강하게 규탄했다.
미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하비에르 바르뎀, 틸다 스윈튼, 마크 러팔로 등 저명한 영화인들은 17일(현지시간) 베를린영화제가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판하는 예술가들을 억압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며 ‘조직적 침묵’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계속 가해지는 끔찍한 폭력에 영화 산업 관련 기관들이 공모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베를린영화제가 과거 이란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던 것과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영화제 측에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 12일 2026 베를린영화제 개막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인 빔 벤더스 감독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벤더스는 가자지구 관련 질문에 “영화 제작자들은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영화는 정치의 반대”라고 말해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출신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해당 발언을 “충격적이고 역겹다”고 비판하며 예정됐던 영화제 참석을 철회했다.
논란의 배경에는 독일의 ‘슈타츠레종’(국가이성) 원칙도 거론된다. 독일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이유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국가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다. 서한에 서명한 영화인들은 이러한 입장이 팔레스타인 인권 옹호 활동을 위축시키고 예술계의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아이린 칸은 독일이 관련 법을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으며, 중국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는 독일의 태도를 “1930년대의 파시스트적 충동”에 비유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베를린영화제 측도 입장을 내놨다. 트리샤 터틀 집행위원장은 “가자 주민들의 고통에 대한 분노와 좌절의 깊이를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공개서한에 담긴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 없는 부정확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