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출혈 투병 중 폐렴으로 25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이외수는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소설과 에세이를 꾸준히 발표해 독자들 사이에서 ’21세기의 기인 소설가’라고 불렸다.
1946년생인 고인은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이 시기에 지독한 가난으로 절망의 시절을 보냈다. 춘천에 거주하면서 하숙집 방세가 밀려서 쫓겨났다. 이후 구걸하면서 빈 쓰레기통이나 개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고인은 1975년 잡지 ‘세대'(世代)의 문예현상공모에서 중편소설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중앙문단에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고인은 이후 단편소설 ‘꽃과 사냥꾼'(1976년작), ‘고수'(高手)(1979년작), ‘개미귀신'(1979년작)을 비롯해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1978년작)을 발표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원시생명에 대한 동경과 환상의식을 추구했다. 이에 섬세한 감수성과 개성적인 문체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라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고인은 보다 좋은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집중했다. 고인은 전업 선언 이후 일상의 편안함을 거부하는 작가정신을 고수하면서 단편소설 ‘박제’,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붙잡혀 온 남자’와 중편소설 ‘장수하늘소’, 장편소설 ‘들개'(1981년작), ‘칼'(1982년작)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특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소설에 해당한다. 이 작품들은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뤄서 이후의 세계관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작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198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였으나 1990년대에 슬럼프에 빠져 작품수가 줄어들었다. 이때 나온 소설이 장편소설 ‘벽오금학도'(1992년작)와 ‘황금비늘'(1997년작)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사물과 단어 200개의 정의를 내린 산문집 ‘감성사전'(1992년작)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황금비늘’은 소년의 성장소설인 동시에 우화의 형식을 빌려 작가가 오랫동안 심취해온 선도(仙道)의 깨달음을 쉬운 언어로 전해주는 구도소설이다.
‘벽오금학도’는 소설의 내용보다 집필과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방 자체를 감옥처럼 바꿔버렸고, 식사도 아내가 사식처럼 갖다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고인은 2000년대 이후 SNS 활동과 함께 문학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집중했다. ‘감성마을’이라고 불리는 이외수문학관은 2012년 8월 강원도 화천군에 개관했다. 생존 작가의 문학관이 생긴 것은 감성마을이 처음이다.
한편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고인은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철학적 삽화가 돋보이는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1983년작), ‘외뿔'(2001년작) 등도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