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LG엔솔)과 일본의 혼다가 미국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하면서 한국 배터리 업체와 일본 완성차 업체 간 ‘배터리 동맹’이 최초로 탄생했다. 자국 브랜드의 부품과 협력사를 선호하는 일본의 완성차업체가 한국 배터리사와 손을 잡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한국 배터리의 글로벌 위상이 높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LG엔솔은 29일 서울 영등포구 본사에서 혼다와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체결식을 열고 총 5조1000억원(44억달러)을 투자해 미국에 4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장 부지는 현재 검토중이며 내년 상반기 착공해 2025년 말부터 파우치 배터리셀 및 모듈을 양산할 계획이다. 생산된 배터리는 혼다와 혼다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큐라 전기차 모델에 공급된다.
이번 합작법인 설립은 한국 배터리 업체와 일본 완성차 업체의 첫 전략적 협력사례이다.
특히 미국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발효하면서 미국내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등장했다. IRA 법안은 중국에서 채굴·가공된 소재와 부품이 일정 비율 이하인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서만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21년 64GWh에서 2023년 143GWh, 2025년 453GWh로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연 평균 성장률만 63%에 달한다.
LG엔솔은 이번 투자 결정으로 북미 배터리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게 됐다. LG엔솔은 20조원 이상을 투자하며 북미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GM과 3개, 스텔란티스와 1개의 합작공장 건설을 비롯해 미국 미시간 단독공장 증설을 진행하고 있으며 애리조나 원통형 공장 건설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또 이번 혼다와 계약을 통해 글로벌 톱10 완성차 업체 중 8곳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됐다. LG엔솔은 현재 폭스바겐, 르노닛산, 현대기아, 스텔란티스, GM, 포드, BMW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혼다는 지난해 판매량 기준 글로벌 7위 수준으로, 일본 완성차 업체 중 전동화에 가장 적극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선 12곳의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북미 시장 점유율은 5~6위를 유지하고 있다.
혼다가 자국 배터리업체가 아닌 한국 업체인 LG엔솔을 택한 데는 LG엔솔의 배터리 기술력과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 해외 공장 가동 운영 경험이 바탕이 된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LG엔솔은 세계 최초로 하이니켈 배터리를 양산하고 충전속도가 대폭 개선된 실리콘 음극재 배터리를 개발했다. 또 파우치형, 원통형 등 다양한 폼팩터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또 대규모 투자를 통해 2025년 이후 북미에서만 255GWh 이상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1회 충전시 5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는 고성능 순수전기차를 300만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반면 일본 파나소닉의 미국 공장은 테슬라 기가팩토리 공장 내 1곳 뿐인 데다 제품군 역시 원통형에 한정돼 있다.
업계에선 다양한 완성차업체들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로 CATL 등 중국산 배터리를 이용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 배터리업체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본은 배터리 분야에 관해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발전돼 있지만 진보적 업체는 없는 상황”이라며 “혼다도 IRA로 인해 중국 배터리로는 답이 없기 때문에 한국 업체를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한국 배터리업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베 토시히로 혼다 최고경영자(CEO)는 “혼다는 2050년까지 모든 제품과 기업활동에서 탄소 중립을 실현할 것”이라며 “고객과 가까운 곳에서 제품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글로벌 배터리 선도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과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지를 구축하게 됐다”고 말했다.
LG엔솔 최고경영자(CEO) 권영수 부회장은 “높은 브랜드 신뢰도를 구축한 혼다와의 이번 합작은 북미 전기차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계기가 될 것”이라며 “고객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전동화에 앞장서 고객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세계 최고의 배터리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