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수소·전기 동력으로 전환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해외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국내 공장·설비·시설 투자 감소를 초래하고 있어 찬반 논란과 일자리 감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차업계의 ‘탈(脫)코리아’ 움직임은 각국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보호무역 확대, 관세 장벽 등 외부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국내법의 각종 규제 강화와 강성노조, 생산효율성 감소 등 내부적 요인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에 발맞춰 미국 현지에 74억달러(8조1417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차와 수소 인프라, 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모빌리티 핵심 사업들을 미국에서 전개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의 대규모 투자 결정은 미국 바이든 정부의 자국산 우대 정책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바이 아메리칸’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미국 자동차노조가 현지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 지급을 요구하는 등 보호무역 기조가 뚜렷한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손잡고 현지에 합작법인을 설립, 6조원을 투자해 배터리 생산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019년 GM과 손잡고 배터리 생산 합작을 선언한 바 있다. 완성차, 특히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생산기지가 미국에 속속 들어서며 상대적으로 국내 잠재적 일자리가 미국에 넘어가게된 셈이다.
배터리 업체들의 미국 현지 생산공장 건설은 시장 규모와 세제혜택, 글로벌 판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다. 하지만 수 많은 부품이 필요한 내연기관이 빠르게 수소·전기 전지로 대체되며 앞날이 불투명해진 국내 부품사 및 일자리 측면에서는 악재임이 분명하다.
자동차 제조의 또 다른 한축이자 핵심 소모품인 타이어 업계의 국내 이탈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반덤핑 관세 부과에 따라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한편, 글로벌 판매를 위한 물류비용 등을 감안해 국내생산 물량을 줄이고 현지생산을 늘리는 추세다.
한국타이어는 미국 테네시주 클라스빌 공장 증설로 생산규모를 2배 끌어올려 연간 1100만본을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금호타이어도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시 공장 증설과 함께 베트남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다. 미국에 생산공장이 없는 넥센타이어도 현지 공장 신설을 저울질 하고 있다.
이같은 완성차 및 배터리·타이어 업체들의 잇단 해외 투자 확대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및 관세 리스크, 글로벌 판매 전진기지 등을 두루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내 생산환경이 갈수록 기업들에게 불리해지는 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국내생산 문제점으로 공통적으로 낮은 생산성을 꼽고 있다. 개도국 대비 높은 인건비를 지불하지만 생산효율은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다. 특히 매년 임단협을 둘러싸고 연례행사가 된 파업 등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기업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울러 정부의 각종 규제와 매력적이지 않은 세제혜택 등도 국내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높은 지대와 노동시장의 비탄력성, 탄소배출 규제에 따른 비용증가, 소극적 세제혜택 등은 기업들이 국내 설비확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진출이 불가피하고, 각종 국내여건 역시 경쟁력 제고에 우호적이라 할 수 없다”며 “해외진출을 막을 순 없다면 국내생산 장려 정책, 리쇼어링 방안 등을 강구해야 국내 일자리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