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 회동이 불발하면서 한국은행 차기 총재 인선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본격적인 긴축 행보에 나선 엄중한 시기에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갈등으로 한은은 총재 공백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 행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불안해질 수 있는만큼 총재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 15~16일(현지시간) 회의 결과 기준금리를 기존 0.00~0.25%에서 0.25~0.50%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 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를 보면 위원들은 올해 말 기준금리가 1.9%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남은 6번의 FOMC 회의 때마다 0.25%p씩 인상해야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연준의 공격적인 통화긴축 행보에 국내 금융권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금 이탈이 우려되는 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까지 겹쳐 경기 둔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공포’마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임 이주열 총재 임기는 오는 31일로 만료된다. 당장 내달 1일부터 한은을 이끌 총재가 임명되지 않을 경우 공백이 불가피하다. 후보 지명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기까지 통상 20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늦은 셈이다.
늦어도 이달 중순에는 신임 총재를 지명해야 하는데,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오찬 회동에서 조율될 것이란 전망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가 불발되고, 주요 기관장 인사권을 두고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힘겨루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내달 1일 신임 한은 총재 취임은 쉽지 않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만약 신임 총재 지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달 1일부터는 이승헌 부총재 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한은 총재가 의장을 맡아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는 올해 상반기에는 4월14일과 5월26일 등 두 차례가 남아 있다. 내달 14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신임 총재가 취임하지 못하면, 총리 부재 상황에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 이 경우 의장 직무 대행이 금통위 의장 역할을 수행하는데, 금통위는 이달 24일 회의에서 4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의장 직무를 대행할 위원을 결정할 예정이다.
금통위 의장 직무 대행 위원은 정해둔 순서에 따라 맡는데, 현재는 서영경 위원(2021년 10월∼2022년 3월)이고, 다음 차례는 주상영 위원으로 알려졌다. 오는 4월14일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까지 공백이 발생할 경우 기자간담회를 수행할 금통위원은 향후 금통위원들이 별도 논의해 정할 예정이라고 한은은 밝혔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한은 총재 부재로 인해 금융시장에 갑자기 큰 혼란까지는 생기진 않겠지만 금리 인상이나 환율 변동 대응력에 있어선 아무래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한은 총재가 현 정부와 차기 정부의 양측 갈등의 뇌관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고위직 인선 등을 둘러싼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의 정치적 셈법에 한은 총재직이 갈등을 촉발시킬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수위 관계자는 “한은 총재직이 왜 갈등의 뇌관으로 등장했다는 것인지 인수위도 어리둥절한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역시 적어도 한은 총재직에 있어선 전문성을 가장 크게 평가할 뿐 인수위와 갈등의 소지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이 정부와 호흡을 맞춰 정책을 수행하긴 하지만 한은의 정책권한이 통화정책으로 한정되는만큼 양측이 첨예한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인사를 추진할 필요성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 현임 이주열 한은 총재도 박근혜 대통령 때인 2014년 4월 총재직에 오른 뒤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연임에 성공했다.
정치권은 한은 총재 공백이 길어질 경우 차기 정부는 물론 현 정부의 부담 역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머지않은 시점에 인수위가 청와대에 인사를 건의하면 청와대가 이를 동의하는 식으로 문제를 매듭지을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과 정치권에선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이론과 실무는 물론 국제감각까지 겸비한 후보로 거론된다.
이 밖에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 인수위 경제1분과 소속 김소영 서울대 교수와 신성환 홍익대 교수도 모두 하마평에 올라 있다. 내부 인사로는 이승헌 부총재, 윤면식 전 부총재 등이 오르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