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가운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회의가 마무리되기 전인 16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올랐다.
우리나라 수석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안 본부장은 WTO 각료회의가 하루 더 연장되자 국내 일정소화를 위해 이태호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 대사를 수석대표로 교체하고 회의장을 이석했다. 이에 외교가 안팎에선 윤석열 정부 초대 통상본부장으로 취임된 안 본부장이 ‘경제 분야의 국제연합(UN)’으로 불리는 WTO의 최고 의사결정 회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는 뒷말이 나온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안 본부장은 국내 일정으로 인해 제12차 각료회의가 마무리되기 전인 16일 귀국길에 올랐다. 당초 각료회의는 12~15일까지 나흘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회의가 하루 더 연장된 것은 WTO가 수산 보조금 금지,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유예 등 쟁점 사안에 대한 추가 협의를 위해서다.
핵심 이슈를 두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평행선을 달리자 WTO 사무총장은 14일 밤 회의를 하루 연장할 것을 제안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인해 안 본부장은 다음 일정 소화를 위해 수석대표 자리를 이태호 대사로 교체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안 본부장은 오는 19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파리 출장에 나선다.
안 본부장이 5년 만에 열린 각료회의가 종료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으나, 국제 다자회의에서는 이처럼 수석대표가 일정상 이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관가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외교부에서는 수석대표가 참석 못할 경우를 대비해 ‘교체 수석대표’를 임명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현지에) 상주하고 있는 대사는 언제든지 수석대표를 할 수 있다”며 “WTO 각료회의의 경우 합의가 안되서 연장되는 경우도 많이 있고, 다자회의에서는 (수석대표 교체가)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새 정부 초대 통상본부장이 공급망 교란·식량 위기 등 무역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각료선언문 채택 합의 등 회의의 전 과정을 직접 챙기지 못해 아쉽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이번 정부 출범 직전,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통상 기능’ 이관 여부를 두고 다툼을 벌였던 점을 돌이켜 볼 때 안 본부장의 귀국이 또 ‘통상 전쟁’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산업부는 안 본부장이 참여해야 하는 주요 협상은 모두 종료됐으며 예상치 못하게 폐회가 하루 늦춰지며 이석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중국 등 주요국가 수석대표도 이미 이석한 상황”이라며 “안 본부장이 총리 순방 수행 등을 위한 일정으로 불가피하게 이석할 수밖에 없었다. 교체 수석대표로 이 대사가 마무리를 맡기로 조율했다”고 밝혔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 역시 국익적 측면이 크기 때문에 안 본부장이 챙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제네바 현지에는 기재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특허청 등 관계부처가 여전히 남아 각료회의에 참여하며 협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편 이번 각료회의에 참석한 164개 회원국의 통상장관들은 식량위기, 농업, 코로나19 팬데믹, WTO 개혁 등 주요 통상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이 중 식량안보와 관련해서는 불필요한 농산품 수출 제한 조치 자제와 인도주의적 목적의 수출제한 예외 인정 등의 대응 방안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유예와 수산 보조금 금지는 각각 제약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며 진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