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가 대북제재 위반 혐의를 받는 북한 사업가를 미국에 송환하자, 북한이 말레이시아에 외교단절을 선언했다. 북한이 국외에서 자금을 세탁하는 방식에 관심이 모아진다.
19일 북한 외무성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성명에서 “17일 말레이시아 당국은 무고한 우리 공민을 ‘범죄자’로 매도하여 끝끝내 미국에 강압적으로 인도하는 용납 못 할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특대형 적대행위를 감행한 말레이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가 미국에 인도한 인물은 문철명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문 씨가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사치품을 북한에 보냈으며 유령회사를 통해 돈세탁을 했다고 봤다. 미측은 2019년 5월 말레이시아에 신병 인도를 요청했고, 말레이시아 법원은 그해 12월 인도를 승인했다.
북한이 제재를 피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수법은 북한 당국이 제3국에 위장회사(유령회사)를 세우고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하는 다른 위장회사를 이용해 북한과 달러 자금을 주고 받는 형식이다.
지난해 7월 미국 법무부가 미 연방 검찰이 자금 세탁에 관여한 혐의가 있는 총 4개의 익명 기업을 지목하고 이들이 불법으로 거래한 237만 달러의 몰수를 요청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4개의 기업이 불법적으로 세탁한 자금은 북한 정권을 위한 물품 조달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불법적 접근을 위해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지난 2018년 11월 미 워싱턴DC 연방검찰은 북한 금융기관들의 달러 세탁을 도와준 싱가포르 기업 1곳과 중국 기업 2곳의 자금을 몰수해 달라고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유류와 석탄 거래를 통해 북한의 자금 세탁을 도운 기업 3곳의 자금 316만7783달러에 대한 사건이었다. 피고 회사로는 홍콩에 본부를 둔 왁스 회사 ‘에이펙스 초이스’, 중국 저장성 원저우에 본부가 있는 목재 회사 ‘위안이 우드’ 등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대규모 자금을 미국의 대형 은행을 통해 세탁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 NBC 방송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 전 세계 400명 이상의 언론인과 함께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등에서 입수한 문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은행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북한과 연관된 11개의 기업 및 개인에게 이득을 제공한 8920만달러의 거래를 감시했다. 이들 기업에 단둥 싼장무역, 싱가포르 SUTL 등이 포함됐다. 글로벌 무역정보업체 판지바에 따르면 싼장무역은 북한으로 최소 80차례 선적했으며, 이 기업은 또 2014년 유엔 보고서에서 북한 선적에 연루돼 있다고 적시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은행이 북한의 자금 세탁에 활용되는 이유로는 이들 은행이 해외 은행의 외환이나 다른 거래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리은행 업무'(correspondent banking)를 담당하기 때문으로 꼽힌다.
재무부는 지난해 “자금 세탁자들이 불법 자금을 옮길 때 대리은행 서비스를 종종 이용한다”며 “미국 금융기관이 종종 이 거래를 무의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대한 취약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 국적의 인사가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에서 법적 처벌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문 씨가 미국 내에서 미국법의 적용을 받아 법적 처벌을 받게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