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이 벼랑끝 위기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내놓으며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킨 이후 거대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동안 버텼지만 결국 백기를 들었다. 사업철수나 축소, 매각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처음 출시한 이후 글로벌 휴대폰 시장은 대변혁을 겪었다. 가장 먼저 세계 피처폰 시장 1위 노키아가 쓰러졌다. 모토로라도 사업을 포기하고 매각 수순을 밟았다. 국내에서 삼성폰·LG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던 팬택도 결국 스마트폰 대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통신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3사와 거래하는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가 사실상 삼성전자와 애플, 두 곳만 남게 되면서 가입자 유치를 위한 각종 마케팅에서 통신사들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제조사’로 넘어간 파워게임…중저가에선 사실상 삼성이 독점?
통신사들은 “수년전 팬택이 무너졌을 때도 급격히 줄어드는 단말 라인업에 곤혹스러움이 컸는데 LG전자의 단말 라인업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그 충격은 훨씬 크다”면서 “이용자 입장에서도 단말 경쟁요인이 줄어들어 불리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중저가 단말 라인업에서 LG폰이 사라지면 사실상 삼성전자 ‘독점’구조다. 애플의 경우 아이폰SE 시리즈가 ‘보급형’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SE시리즈는 매년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가격 자체도 저렴하지 않다.
통신사 관계자는 “이제 삼성과 애플을 제외하면 화웨이나 샤오미 같은 중국 제품을 판매해야한다는 얘기인데, 애플을 제외하면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외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떨어지고 애플은 저가 라인업도 거의 없어서 중저가 라인업은 사실상 삼성의 독점구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만 LG전자가 스마트폰 생산설비 등을 매각한다 하더라도 외주생산(ODM) 방식으로 중저가 라인업은 사업을 지속할 가능성도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어떤 시장이든 ‘독과점’이나 경쟁이 제한된 시장은 이용자에게 극히 불리하다”면서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중단할 경우 중저가 라인업부터 5G 프리미엄 라인업까지 경쟁이 대폭 줄어 마케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단말 제조업체간 경쟁이 줄어드는 만큼 통신사들이 단말기를 수급받거나 유통하는데 있어서도 협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통신사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통신사들이 단말기를 출시할 때는 제조사가 판매장려금을 얼마나 지급할 지, 물량은 어느정도나 될 지, 공급 시점은 어느정도인지를 모두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시장에 삼성과 애플 두 곳만 남은 상황에서 A사가 신제품을 공급하면서 통신사들에게 ‘보조금을 더 많이 실어달라’고 압박을 한다거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경우 물량 부족을 이유로 공급량을 갑자기 확 줄여버린다면 통신사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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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모바일 커뮤니케이션)사업부 중 연구개발부문을 남겨두고 생산부문을 분할해 매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자기기 매장에 전시된 LG전자 스마트폰 ‘윙’의 모습. 2021.1.2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
◇팬택 무너진 이후 삼성·애플 양강구도에 통신사 주도권 내줘
사실 통신사들의 이같은 우려는 지난 2014년 ‘벤처신화’ 팬택이 무너지면서 한차례 겪었던 트라우마가 생생하기 때문이다.
중저가폰 중심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벤처신화를 써 내려가던 단말제조업체 팬택은 SK텔레텍의 ‘스카이’를 인수하면서 프리미엄 라인업을 확대해 입지를 크게 넓혔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키자 팬택 역시 ‘베가’ 시리즈를 등을 출시하며 총력 대응했다.
하지만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글로벌 부품 수급을 위한 공급체인, 마케팅 등 모든 측면에서 팬택은 대기업과 경쟁하는데 힘이 부쳤다. 2007년에 이미 상장폐지와 워크아웃 등을 겪은 팬택은 결국 2014년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팬택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동통신사들은 팬택의 제품을 대거 ‘재고정리’수준으로 내보내고 팬택의 신제품을 받아주지도 않았다. 팬택이 워크아웃을 겪는 어려운 와중에도 피땀을 쥐어짜 개발한 ‘베가레이서2’는 기능과 디자인 등 모든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출고가 80만원대인 제품을 이동통신사가 30만원대로 낮춰 판매하는 등 팬택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결국 팬택이 무너지자 이동통신사들은 부메랑을 맞았다. 시장이 삼성과 애플 양강체제로 굳어지고 LG폰이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면서 삼성과 애플에 ‘협상 주도권’을 완전히 내 줘버리게 된 것이다.
팬택과 달리 연구개발 역량과 자본력이 충분했던 LG전자는 스마트폰에 대한 ‘판단’이 잘못된 케이스다.
LG전자가 2005년 출시한 ‘초콜릿폰’은 누적 1000만대 판매 기록을 세웠고, 2007년에 공개한 ‘프라다폰’은 고가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러움으로 인기를 끌었다.
대중성도 있었다. 2009년 출시한 ‘롤리팝폰’ 시리즈는 당시 최고 인기를 끌었던 빅뱅과 2NE1의 CM송과 함께 2030세대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아이폰 출시 이후 재편된 2010년대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는 초코릿폰의 달콤함에 빠진 나머지 스마트폰 ‘대세’를 놓쳤다. LG전자는 “스마트폰은 너무 어렵고 앞서간 기술이며 결국 소비자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피처폰 신제품을 출시했다. 그마저도 신선함은 없었다. 전작의 흥행에 기댄 ‘뉴초콜릿폰’, ‘롤리팝2’였기 때문이다.
결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발 뒤진 LG전자는 그 차이를 메꾸는데 10년을 쏟아붓고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2015년 2분기 첫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21년 현재까지 한번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려 23분기 연속으로, 누적 적자액은 5조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통신사들은 LG전자가 어떤 형태로든 단말 사업을 지속했으면 한다고 속내를 나타냈다.
통신사 관계자는 “지난 2019년 삼성전자가 갤럭시S10 5G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을때, 5G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단말이 S10 한가지였다. 이후 LG전자가 V50을 출시하면서 마케팅에 숨통이 틔였다”면서 “시장에는 반드시 경쟁이 필요하고 다양성이 존재해야 하기에 LG폰이 명맥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