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감정싸움이 격화하고 있다. 첨단 장비 반입 금지에 반도체 판매 중지까지 ‘강수’가 이어졌다. 한국에도 동참을 요구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숨죽인 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사이익도 좋지만, 자칫하다가는 불똥이 튈 수 있어서다.
다만 한국이 메모리 1위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만큼 양국 갈등 상황을 이용해 미국 반도체과학법 가드레일 완화 등의 조치를 끌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격화된 미-중 반도체 갈등…반도체 판매까지 제한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지난 21일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제품이 중국의 중요한 정보 인프라 공급망에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했다”며 “중요한 국가 안보시설 운영자들은 제품 구매를 중지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판매 중지 조치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중국에서 4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회사 전체 매출의 11%에 해당한다. 가뜩이나 반도체 침체로 힘든 상황에서 마이크론에 악재가 하나 더 생겼다.
이번 조치는 앞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와 G7 중국 제재에 따른 보복 조치로 풀이된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마이크론 주문 물량을 줄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제재에 미 의회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에 대한 고강도 수출 규제를 요구하며 강력 대응에 나섰다.
‘대중 강경파’로 불리는 미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 미·중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로이터통신에 “상무부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해야 한다”며 “미국 기술이 CXMT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또는 다른 중국 기업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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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
◇ 숨죽인 삼성·SK…”정치적 불확실성↑”
한국도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압박받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했다.
마이크 갤러거 의원은 성명을 통해 “미국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가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한국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backfilling)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일본은 미국 손을 잡았다. 지난 23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중국을 겨냥해 23개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전적으로 자신의 패권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국가의 대중국 수출 제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 요구에 응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난감하다. 경제적으로 어느 한 국가를 택하고, 다른 국가를 적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중국의 마이크론 금지조치가 성공할지 아니면 미국과 동맹의 공급망과 격차가 벌어질지 결정될 것”이라고 평가하며 한국이 미묘한 상황이 됐다고 보도했다.
마이크론의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도 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가 더 부담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쑤저우에 패키징 공장을 가동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이, 충칭엔 패키징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낸드 20%를 중국에서 만든다.
자칫하다가는 생산이나 공장 확장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별다른 입장이 없다”며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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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시안 반도체공장. (삼성전자 제공) |
일부에서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정부는 반도체법 보조금 가드레일 조항을 완화해 달라고 미 정부에 공식 요청해 놓은 상태다.
특히 첨단 반도체의 실질적인 확장의 기준을 기존 5%에서 10%로 늘려 줄 것을 요구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보조금을 받고도 중국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의미다.
한편 미-중 반도체 갈등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으로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손이 묶인 상태”라며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반도체 전쟁이 결국 미국의 발등을 찍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칩을 사들일 수 없다면 자체 개발에 나설 것”이라며 “이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만 도와줄 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