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9월 10일,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각종 백인학교에 흑인 학생 20명이 최초로 입학했다. 이는 단순한 입학을 넘어,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 평등을 향한 용기 있는 발걸음이었으며, 미국 사회의 변화를 끌어낸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
이보다 9년 앞서 미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브라운 판결’을 내렸지만, 남부 지역은 여전히 인종 통합에 대한 저항이 강했다. 특히 버밍햄은 인종 차별이 심각한 도시였으며, 당시 앨라배마주 주지사 조지 월리스는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막기 위해 경찰력까지 동원하는 등 강력하게 반대했다.
흑인 학생들은 결국 연방정부의 개입과 시민들의 지지 속에 학교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당시 흑인 학생들이 앨라배마 대학대학에 첫 등교하는 날의 분위기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잘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백인 학생들의 맹렬한 저항과 학교 출석률 감소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켜 인종 차별 문제의식을 고조시키고, 평등을 향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했다. 시간이 흘러 1988년 무렵에는 남부 흑인 학생의 43%가 백인 학교에 다니게 되는 등 인종 통합이 상당 부분 진전됐다. 월리스 주지사도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자신의 인종차별적인 과거 행적에 참회하고 인종 차별 반대론자로 전향했다.
2기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도 역사적인 이 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그는 인종 차별의 경험이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하며, 후배들에게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을 격려했다.
버밍햄 백인학교에 흑인 학생들이 최초로 입학한 사건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인종 차별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서는 용기와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