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 선생은 저항의 문학에 앞장선 점을 가장 자랑스러워하셨어요.”
24일 거행된 고(故) 이어령 선생 1주기 추모 특별전시회 ‘이어령의 서(序)’ 개막식에서 아내인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은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평론가로 ‘문학의 저항’을 주창한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며 “나에게는 반려자이자 평생 최고의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24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는 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석학이었으며, 한국 문화 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초대 문화부 장관 고 이어령 선생의 1주기 추모 특별전시회 ‘이어령의 서’ 개막식이 열렸다.
이어령 선생은 다재다능하고 무한한 창조의 삶을 살았다. ‘이어령의 서(序)’란 이러한 무한의 길의 시작에 있는 머리말을 의미한다.
전시에 앞서 이어령 선생의 아내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과 아들인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약식 기자간담회를 갖고 생전의 이어령 선생을 회상했다.
이 교수는 “아버님이 창조하는 사람으로 후대에 기억되면 좋겠다”며 “아버님은 평소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보다 우물을 찾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회고했다.
강 관장에 따르면 앞으로 이어령 선생의 출간물은 계속 발행될 것이며 이중에는 미공개 원고도 다수 있다.

이어진 추도식에서는 이어령 선생의 일대를 돌아보는 영상물이 상영됐다. 선생이 생전에 가장 좋아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배경 음악으로 장중하게 깔렸다.
영상물은 문학에서 기존의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저항의 문학을 주창하고 나선 20대의 평론가의 등장에서부터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를 거치며 학자, 교육자, 행정가, 크리에이터로서 살아온 이어령 선생의 삶을 조명했다.
이어령 선생의 생전 업적은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의 독특한 정체성을 규명해 앞으로 문화강국이 될 것임을 간파한 점은 시대를 앞서간 지성인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장관 재직 시 인사권은 일체 행사하지 않고 정책에만 집중했던 일, 88올림픽 개막식 때 굴렁쇠 장면을 연출한 일, 임기 마지막 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립을 끝내 성사시킨 일, ‘디지로그’라는 신조어를 창안해낸 일 등 많은 일화도 소개됐다.

이번 전시는 ‘침묵의 복도(프롤로그)’, ‘창조의 서재’,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이어령과 조우하다’, ‘무한의 길’, ‘굿나잇 이어령(에필로그)’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어둡고 고요한 ‘침묵의 복도’를 지나면, ‘창조의 서재’를 만나게 되는데 굴렁쇠를 의미하는 둥근 원 안에 이어령 선생이 쓴 육필원고 1점과 평소 사용했던 오래된 책상, 가방, 안경, 필기구 등 유품이 전시돼 있다.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코너에는 어린이책 66책을 포함한 고인이 단독으로 집필한 저서 185권이 있다. ‘저항의 문학(1959)’,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공간의 기호학(2000)’, ‘너 어디에서 왔니(2020)’ 등 대표 저서 5권의 초판본도 볼 수 있다.
‘이어령과 조우하다’ 코너에서는 영상을 통해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연출자, 문화부 장관 시절의 모습은 물론, 손자를 안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 등 인간 이어령 선생을 만날 수 있다.
‘무한의 길’ 코너에서는 이어령 선생님의 삶의 이력을 볼 수 있으며, ‘굿나잇 이어령’은 관람객이 작성한 전시 감상 메시지가 이어령 선생님의 얼굴로 완성되는 쌍방향 미디어아트 체험 코너다.

추도식과 개막식에서는 유족을 대표해 강 관장이 추도객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김덕수와 앙상블시나위의 추모 연주도 있었다.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추모식에서 박보균 문화체육부 장관은 추도사에서 언론계 재직 당시 이어령 선생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깊은 그리움을 전했다.
오는 4월2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이어령 선생의 작업, 활동, 일상 등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고인을 만날 수 있다.
전시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도슨트 프로그램을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에 진행하며(사전예약 불필요), 중고생의 단체 방문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